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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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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서거 70주년을 맞은 조지 오웰은 현대 영국인들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다. 시인 딜런 토머스와 함께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현대 문인이기도 하다. 오웰의 대표작 ‘1984’와 ‘동물농장’은 영국 학교 독서 목록에 반드시 들어가 있어 영국 학생들이 모두 한 번은 읽는다. 2016년 성인 원격 교육기관 ‘옥스퍼드 홈 스쿨링’이 조사한 ‘학교 때 읽은 문학작품 선호도’ 조사에서 ‘동물농장’은 2000명의 성인 중 27%가 ‘가장 즐겁게 공부했던 작품’으로 꼽아 1위를 차지했다.
   
   ‘동물농장’은 동물들이 주로 등장하는 거의 동화 같은 작품이라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다. 특히 초등학교 초급반 학생들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문장이나 단어가 평이하다. 이는 오웰이 주장하는 작문의 5대 원칙 중 ‘짧은 단어가 있는데 긴 단어 쓰지 말고’와 ‘단어를 줄일 수 있으면 가능한 한 많이 줄인다’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은 1944년 2월에 완성되었으나 당시 영국이 소련과 동맹국 관계여서 1945년 8월에 간신히 출판되었다. 출판 과정에서 4개의 대형 출판사들로부터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거절 편지는 지금도 존재하는 대형출판사 ‘파버 앤 파버’의 편집장이던 시인 T.S. 엘리엇의 편지다. 엘리엇은 ‘뛰어난 작품(distinguished piece of writing)’이긴 하지만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는(to criticise the political situation at present time)’ 작품은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검열의 이유를 변명으로 들었다. 오웰의 ‘동물농장’ 집필 목적이 소련을 조롱하려는 것이라는 오웰의 의도를 출판사가 인정한 셈이다.
   
   
   T.S. 엘리엇이 출판 거절한 ‘동물농장’
   
   하지만 ‘동물농장’은 1945년 8월 출간되자마자 초판 4500권이 금방 팔렸다. 11월에 2쇄 1만권, 다음 해에 6000권이 나갔다. 1946년 미국에서는 초판 5만권이 발행돼 금방 매진되었다. 이어서 북클럽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1차 43만권, 2차 12만권을 파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에서는 영국에서 첫 출간된 지 단 3년 만인 1948년 영어권 말고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서 반드시 필요한 반소(反蘇) 문학이라는 이유 때문에 서둘러 출간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농장’이 출간되었을 때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여왕의 어머니를 위해 거래 서점에 사람을 보냈으나 이미 매진되어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실크해트를 쓰고 마차를 탄 시종이 무정부주의 서적만 취급하는 ‘프리덤 서점’으로 가서 구해 왔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나중에 실크해트가 아니라 중산모, 마차가 아니라 택시를 타고 가서 사온 것이 진실이라고 수정될 만큼 유명하다. 그 정도로 ‘동물농장’은 출간부터 인기를 끌었는데 인기 이유는 당시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오웰은 당시를 이렇게 표현한다.
   
   ‘영국 지식인은 유럽화되어 있다. 그들은 요리는 프랑스에서 배우고, 의견은 모스크바에서 가져온다. 그들의 영국에 대한 일반적인 애국심은 현실에서 분리된 일종의 반체제 사고방식이다. 영국은 아마 지식인들이 자신의 국적을 수치스러워하는 유일한 강대국인 듯하다. 지식인들은 자신이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항상 살짝 불명예스러워한다. 그리고는 경마, 수에트푸딩(suet pudding) 같은 모든 영국적인 전통을 비웃는다. 모든 영국 지식인은 국가가 울릴 때의 정자세를 성당 안 빈자의 돈통(poor box)에서 돈을 훔치는 일보다 더 부끄러워한다. 이런 일이 의문의 여지조차 없이 진실인 점은 정말 이상하다. 지난 중요한 몇 년간 좌파 인사들은 영국식 도덕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찌 보면 좀 물렁한 반전(反戰)주의 같거나 극렬한 러시아 성향의, 그러나 언제나 반(反)영국적인 견해를 퍼뜨리려고 노력했다.’
   
   어찌 보면 어느 시절 어느 나라나 지식인들의 행태는 비슷할지 모른다. 그래서 오웰은 언론을 통해 지식인들이 전해주는 실상과는 전혀 다른 소련의 현실을 ‘동물농장’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던 듯하다. 하지만 오웰의 정치 성향은 사실 아주 모호하다. 작품도 좌우 양쪽을 왔다갔다 한다. 오웰의 대표작인 ‘동물농장’과 ‘1984’는 분명 보수우익 성향이다. 하지만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같은 작품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나 기득권 세력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가차 없이 가한다. 오웰은 노동조합 본부의 지원으로 영국 중부와 북부의 참혹한 탄광 노동자와 부두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했다. 당시로는 엄청나게 큰 190㎝의 키로 탄광 막장까지 들어갔고, 부두에서는 노숙까지 하면서 철저히 조사했다. 그리고는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서술해 당시 1·2차 대전 사이 간전기(間戰期) 영국 사회 밑바닥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절찬을 받은 좌파 문학작품들을 썼다.
   
   당시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친(親)소련 성향이었다. 그들은 전대미문의 사회주의 실험을 숨죽이고 바라보면서 성공을 기원하고 있던 참이었다. 1930년 250만명의 실업자가 있던 영국의 지식인 눈에는 전 국민 완전고용을 이룬 소련이 거의 지상천국으로 비쳤다. 이런 상황에서 오웰이 ‘동물농장’을 들고나와 소련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니 황당했으나 호기심에서라도 읽으려 했다.
   
   
   지식인 중 거의 유일하게 ‘영국을 사랑한다’고 공개 선언
   
   오웰은 1930~1940년대 영국 지식인 중 거의 유일하게 영국을 사랑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이었다. 2차 대전이 터지자 자신의 정치 성향에 반하는 보수당 정권 시절이었지만 “나는 영국 정부에 충성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군 자원 입대에 실패하고 나서 BBC에서 참전 인도군을 위한 홍보 방송을 했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애국심을 강조하는 모순의 사나이였다. 어찌 보면 경계선상의 인물이었다. 출신으로 보면 분명 보수우익인데 작품으로 보면 진보좌익이었다.
   
   오웰의 아버지는 인도 아편국에 근무한 간부 공무원이었지만 증조부는 백작 딸을 부인으로 맞은 자메이카 농장주였다. 이른바 재촌(在村) 부자 중산층 신분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성공회 신부였으니 상류층이었다. 그러나 오웰은 자신의 계급을 중상류, 중산층이라고 격하했다. 집안이 가난해서 이튼 칼리지 장학생으로 들여보내려고 어머니가 힘을 썼다고도 알려졌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억울한 소문이었다. 오웰은 이튼 칼리지 입학 때 킹스 스콜라 장학생이었다. 킹스 스콜라는 아주 성적이 우수한 소수 학생만 받을 수 있는 장학제도이다. 이들은 기숙사도 따로 쓰고 평소 교복 위에 일반 학생과는 다른 가운을 입는 특전을 받는다. 보리스 존슨 현 영국 총리가 킹스 스콜라 출신이고,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당시 오웰의 프랑스어 선생),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영국 전 총리 해럴드 맥밀런 등도 킹스 스콜라 출신이다. 영국에서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최고 영예의 장학생이다.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싫어한 인물
   
   오웰이 ‘동물농장’을 공산주의를 반대하기 때문에 썼다고 하면 “하나만 보는 일”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하지만 그건 정말 오웰의 창작의도를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오도하는 일이다. 물론 오웰은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모두 공평하게 싫어했다. 케인스 식의 국가주도형 경제마저도 싫어했다. 그중에도 특히 스탈린이 주도하는 소련의 독재주의와 전체주의를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동물농장’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비난하기 위해 썼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오웰은 ‘1984’ 첫 유럽 번역판이었던 우크라이나판 서문에 ‘스페인 시민전쟁을 겪으며 나는 전체주의 선전이 민주주의 국가들의 개화된 국민을 얼마나 쉽게 조종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라고 밝혔다. 오웰은 스탈린이 10월혁명 정신을 배반했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1936년 스페인내전 참전 이후 내가 쓴 모든 글은 전체주의와 독재주의를 반대하기 위한 글이고 민주사회주의를 위한 글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웰이 지금도 존경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진영 논리에 묻히지 않고 진실과 진리를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웰은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의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라는 자신의 소신에 충실했다.
   
   오웰은 스페인내전 참전에 대해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1935년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게 살 수 없는 시기였다. 파시즘의 위협이 분명해지던 때였다. 결국 파시즘이란 자본주의가 발전한 것이고, 소위 가장 온건하다는 민주주주의는 위급한 경우에 파시즘으로 변질되기 쉽다. 우리는 영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도에서의 통치는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신경을 덜 자극한다 뿐이지 독일의 파시즘만큼 나쁜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행동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펜을 버리고 총을 든 후 불나방처럼 스페인으로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자신의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있었다. 서방 지식인에게 스페인내전은 단순한 현실 참여의 앙가주망(engagement) 수준이 아닌 양심이 내린 소명(召命)이었다. 오웰도 1936년 스페인내전에 참여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갔고 곧이어 부인 아일린도 따라 왔다.
   
   
   스페인내전에 참전했다가 공화파에도 회의
   
   하지만 오웰은 스페인에서도 회의에 빠졌다. 그는 ‘카탈루냐 찬가’에서 이렇게 썼다.
   
   ‘처음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는 혁명 초기의 순수와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전선에서 3개월을 보낸 뒤 돌아오니 혁명적인 분위기가 바뀌고 열정도 순수도 사라지고 빈부와 상하의 계급이 다시 생겨나 있었다. 혁명 시작에는 계급도 없고 경례도 없고 부동자세도 없고 장군의 등을 치고 담배를 달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렇게 실질적인 공포정치가 시작되고 있었다. 파시즘에 저항한다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다른 파시즘, 재판도 없이 무더기로 100명씩 투옥해 기한도 없이 갇힌 사람들, 이유도 모르고 발행이 금지된 신문들….’
   
   이렇게 오웰은 스페인내전 도중 공화파가 지배했던 바르셀로나의 현실을 비관했다. 오웰은 바로 그 뒤에 소련이 있다고 봤다. 오웰은 이를 세계 양심세력에 고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진보좌파들은 아직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소련은 한계에 달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암담한 세상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또 당시 영국은 독일과 대항하기 위해 소련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반소련 성향인 오웰의 목소리는 인기가 없었다. 당시 영국은 과거 왕의 권력으로부터 민권을 쟁취하자고 만든 자유당 지지 중산층 지식인들이 노동당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자유당의 몰락과 노동당의 대두로 이어졌다. 당시 노동당은 완전히 소련 편이었다. 그래서 완전고용을 하고 있다는 소련의 계획경제만이 유일한 구원책이라고 여기고 탐욕스러운 자본가들로부터 세계를 구할 길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뿐이라고 여기면서 누구도 소련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렇게 공산주의의 물결이 바람을 맞은 들판의 불처럼 유럽을 휩쓸어 갈 때였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도 오웰은 파시즘과 전체주의는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간다고 여기면서 그에 맞서는 자신의 활동도 펜을 통해 행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이 항상 주장해온 대로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의 일환으로 ‘동물농장’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오웰은 소련에 권력층이 생기고 계급으로 국민을 가르는 실상을 ‘동물농장’을 통해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오웰은 전체주의를 비판했지 소련을 특별히 비판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웰은 자신의 글 여러 곳에서 ‘동물농장’은 소련을 ‘풍자하고 비꼬기(satire)’ 위해 썼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10월혁명이 부순 계급제도와 특권의식을 소련 지도층이 다시 도입했기에 ‘동물농장’을 통해 비판했다는 것이다. 오웰은 ‘동물농장’의 가장 유명한 문장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를 소련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썼다. 그는 이런 문장을 쓰면서 절망하고 분노했다. ‘누구도 혁명을 보호하기 위해 독재정부를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은 독재정부를 만들기 위해 혁명을 한다(One does not establish a dictatorship in order to safeguard a revolution; one makes a revolution in order to establish a dictatorship)’라는 ‘동물농장’ 집필 의도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을 체포하려는 스페인 공화정 경찰을 따돌리고 구사일생으로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 부부는 런던 근교 웰링턴에서 닭, 오리, 염소, 개를 키웠다. 오웰은 자신의 농장에서 풀어놓기만 하면 암탉을 덮치는 수탉을 헨리 포드, 그 수탉만 보면 짓는 개를 마르크스로 명명했다. 이런 경험이 결국 ‘동물농장’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웰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어떻게 독재 전체국가로 바뀌는지를 ‘동물농장’ 곳곳에 녹여 넣었는데 구체적인 대목들을 보자.
   
   

   가축 키운 경험이 ‘동물농장’ 바탕
   
   주인공인 돼지 나폴레옹은 강아지들이 태어나자마자 빼돌려 비밀리에 교육시킨 후 자신의 체제 수호 수단으로 만든다. 이건 소련의 KGB를 연상케 한다. 아무런 영혼 없이 시키는 대로 나폴레옹에게 무조건 충성 구호를 외치는 양들은 바로 공산당원들이다. 자신들에게 혁명 철학을 연설로 일러준 메이저 영감의 유골을 캐내 총과 함께 게양대 아래 배치해 일렬로 행진하면서 지나가게 하는 일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 묘를 희화화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동물들을 세뇌시켜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도 행복하기만 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모두 자신과 후손을 위한 일일 뿐만 아니라 결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착취하는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동물들은 ‘자신들이 농장 주인이며 이 모든 노동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위안이 되어 즐거웠다’ ‘그들은 자신들이 굶주리는 일은 있어도 독재하는 인간들을 먹여살리느라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고생스럽게 일하는 것은 최소한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두 발로 걷지 않았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했다라는 착각을 굳게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독재자이자 수괴인 돼지 나폴레옹은 결국 본색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지도자’로 부르게 하다가 급기야는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무’ ‘모든 동물의 아버지’ ‘인간의 공포의 존재’라고 부르게 한다. 아직도 북한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런 모습을 70년도 더 전에 오웰이 ‘동물농장’에 그대로 묘사한 셈이다. 암탉이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무의 지도로 나는 엿새 동안 계란을 다섯 개나 낳았어요”라고 말하고, 암소가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면서 “나폴레옹 동지의 영도력에 감사해야지. 물맛이 이렇게 좋아졌으니 말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정말 기시감(旣視感)에 고소를 금치 못한다.
   
   나폴레옹은 바람에 풍차가 무너지면 쫓겨난 라이벌 돼지 스노볼이 한 짓이라고 누명을 씌워 위기를 벗어난다. 동물들의 불평이 생길 만하면 “그들은 우리를 일하게 만들었으면서도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아주 적은 양만 주었다”면서 원래 주인 존스가 다시 돌아오려고 하는데 그래도 좋냐고 협박을 한다. 외부의 적을 이용해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는 수법은 어느 독재자나 쓰는 수법이다.
   
   결국 나폴레옹은 인간과 다름없이 변해 간다. 파이프 물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인간의 옷을 입고 침대에서 잔다. ‘크라운 더비 본 차이나’에 밥을 먹기도 하고 결국 주변 농장주 인간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혁명 철학을 일깨워 준 메이저 영감의 뼈에 경례하는 일도 멈춘다. 자신이 모든 걸 했는데 누구한테 공을 돌리느냐는 거만이다. 농장 깃발마저 뿔과 발굽이 사라진 단순한 초록색 깃발로 바꾼 후 거기서 자신들 돼지 말고는 다른 동물을 하층동물이라고 부른다. 급기야는 동물농장을 원래 이름인 마노농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선언한다. 결국 자신은 존스를 대신하는 농장주인 인간이라는 뜻이다.
   
   
   여자친구에게 공산주의 동조자 38명 명단 넘겨
   
   소설 말미에 돼지들은 이웃 농장주와 카드 놀이를 하다가 카드 속임수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다. 동물들이 들여다보니 누가 돼지인지 인간인지가 얼굴로는 구별이 안 되는 상태까지 가 버린다. 드디어 돼지가 인간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 상황을 묘사하는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바깥의 창조물들이 돼지로부터 인간을,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돼지를, 다시 돼지로부터 인간을 쳐다봤으나 누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The creature outside looked from pig to man, and from man to pig, and from pig to man again, but already it was impossible to say which one was which).’
   
   여기서 주어 창조물(creature)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바깥의 동물’들이라고 하면 될 텐데 오웰은 왜 굳이 ‘창조물’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아마 동물들도 우리 인간과 같이 창조주(The Creator)가 만든 창조물이라는 뜻을 은연중 일러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03년 6월 영국 진보 정론지 가디언은 오웰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오웰이 생전에 공산주의 동조자 38명의 명단을 정부에 넘겨주었다는 보도였다. 관련 서류는 54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영국 정부가 기밀로 취급하고 있어서 공개가 안 된 상태였는데 오웰의 오랜 여자친구였던 세실리아 키르완의 유품에서 이 기밀문서가 나왔다. 외무부 정보조사부(IRD) 요원이었던 키르완은 오웰에게 영국으로 파고드는 소련의 영향에 대항하기 위해 도움을 청했다. 오웰은 배우 찰리 채플린, 역사학자 E.H. 카, 역사학자 아이작 도이처를 비롯한 38명을 ‘서방을 위한 선전자(propagandists)로 신뢰할 수 없는 자’로 지명해서 키르완에게 주었다. 이미 중병에서 신음하고 있던 오웰이 작성해 넘겨준 명단 사본이 2002년 키르완 사망 후 딸이 서류를 정리하던 중 발견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기사화한 가디언의 기자는 “결코 비난할 수 없는 아주 인간적인 행위였다. 오웰이 살아 있다면 내가 실수했다고 하면 용서받을 일이다”라고 가볍게 언급했다.
   
   오웰은 4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면했지만 작품은 대단히 많다. 무려 200만 단어에 해당하는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도 오웰은 자신이 너무 게을러 작품을 많이 쓰지 못했다고 항상 말했다. 오웰은 작품에서 수많은 의미심장한 말과 새 단어도 만들어냈다. 그가 만든 신조어 중에 ‘냉전(Cold War)’이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오웰은 1945년 10월 19일 자 트리뷴에 ‘당신과 원자폭탄’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쓰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오웰을 기리는 후세들의 호칭을 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삶을 살다가 갔는지가 엿보인다. ‘이튼 출신 프롤레타리아 노동자(Etonian prole)’ ‘반식민주의 제국경찰(anti-colonial policeman)’ ‘중산계급 부랑자(bourgeois bum)’ ‘무정부 보수주의자(Tory Anarchist)’ ‘반좌파의 좌파지식인(Leftist critic of the Left)’ ‘금욕주의 호색한(puritanical lecher)’ ‘친절한 독재자(kindly autocrat)’ ‘일반적인 예의의 성자(The saint of common decency)’ ‘현대 최초의 성자(first saint of modern era)’ 등등이다. 아마도 오웰 스스로는 자신을 ‘몽상주의적 무정부주의자(utopian arnachist)’로 불러주면 제일 좋아할지 모르겠다.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유럽문화탐사(2015)
번역: 영국인 발견(2010),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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