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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hherald 2017.10.16 17:32 조회 수 : 301

학창시절 이해되지 않은 시 몇 개를 암송 했습니다. 그게 멋있어 보였으며 의례히 그렇게 해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매 연말이면 학생부에서 학회지를 발행 했습니다. 철필로 원고를 쓰고 등사해서 완성되는 어설픈 형태의 인쇄물이지만 당시에는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모든 학생부들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시골 작은 교회지만 뜻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힘써서 학회지를 만들었습니다. 회원들은 글을 써야 하고 각자의 이름 아래에 개인 신상을 적어야 했습니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것, 취미. 좋아하는 시를 기록하는 페이지입니다. 그래서 매년 새로운 시를 외워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학회지 한 부 가지고 있지 않음이 애석할 뿐입니다. 기억나는 시 중에 알렉산데르 푸슈킨(Aleksandr Pushkin, 1799 -1837)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유명 시여서 암송은 했지만 학창시절 시의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한국 옛 모습이 담긴 ‘검정고무신’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목양관에 오면 의례히 한두 편은 봐야 하는 필독 영상이었습니다. 중학생 기철 이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푸슈킨 시를 암송 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무심코 보던 꼬마숙녀 예서(영국, 중학교 1학년)가 느닷없이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삶이 그대를 속인다는 게 뭐에요?’ 생각 없이 던진 질문임을 알고 있지만 무언가 답을 해줘야 하는데 막막해졌습니다. 망설이고 있는데 화면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만화는 끝이 났습니다. 질문한 예서는 더 이상 질문에 대한 답을 재촉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뒤안길에서 암송했던 시기도 중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서의 질문처럼 삶이 그대를 속인다는 의미가 뭔지를 몰랐습니다. 삶이 어떻게 속이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괴로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답을 얻지 못한 채 반백년을 살아오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런 시를 쓸 수 있었던 알렉산데르 푸슈킨의 시성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삶은 내 뜻대로 되어 지지 않습니다. 생각대로 되는 것을 복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절망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의 결과대로 삶이 이뤄진다면 행복보다는 불행한 일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앵커를 꿈꾸던 사람이 방송 사고로 인하여 회사에서 회고를 당하게 됩니다. 설상가상 여자 친구는 결별을 요구했습니다.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게 됩니다. 최악의 절망에서 영화의 내용은 전개됩니다. 주인공은 하나님의 역을 대행하는 신적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잠시 그에게 세상을 맡겨 둡니다. 그가 하나님이 되어서 첫 번 한 일은 자기가 가진 힘을 과시하는 거였습니다. 자신이 마시는 커피 잔에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커피를 양쪽으로 갈라놓는 일이었습니다. 여자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생일날 달을 끌어와 아파트 베란다에 묶어 놓았습니다. 여자 친구는 이렇게 큰 달은 처음 본다며 기뻐했습니다. 달이 한곳에 멈춰버리자 일본에서는 해일이 일어나고 한쪽에서는 낮만 존재해서 세계적으로 자연 재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인공이 잠을 자는데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들여오는 기도소리 때문입니다. 그것을 듣고 일일이 답을 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주인공은 귀찮아서 자동 응답으로 전환시켜 놓게 됩니다. 로또 복권에 일등으로 당첨된 사람이 많아서 일등 당첨금이 일 달러도 되지 않았고, 모든 주식이 하늘을 치솟을 만큼 올라서 의미 없는 금액이 되어 버렸습니다. 회사마다 초고속 승진이 있어서 평사원이 없었으며 생각하고 기도했던 것들이 순간에 이뤄지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서는 평안을 찾을 수 없고 불안만 야기되는 지옥과 같은 곳이 되어 버리게 됩니다. 

 

물론 실제 상황이 아니라 재미있게 꾸며진 영화이야기입니다. 바로 내 인생과 동갑인 짐 케리(Jim Carrey)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 (Bruce Almighty, 2003)입니다. 생각대로 이뤄지게 되면 사회가 혼란스럽게 될 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건너편에서 무겁게 손수레를 끌고 가시는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달려가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실상은 용기가 나지 않았고, 밀어 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손수레를 지켜보면서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암기했던 푸슈킨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손수레를 힘겹고 위태롭게 끌고 가시는 할아버지는 그 시를 이해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삶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삶을 속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박심원 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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