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2월 8일, 일본의 도고 제독의 지휘하에 여순항과 제물포에서의 러시아 함대 기습으로 시작된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난 다음 해 1905년 5월, 일본은 한반도 전체를 삼키기 전에 그 애피타이저로 독도를 꿀꺽한다.
이 무렵 서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러시아가 일본에 힘도 못 써보고 깨지자 지금까지 아버지처럼 믿어왔던 차르(황제)에 대한 러시아 민중들의 무한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1905년 정월, 수많은 노동자가 러시아 황제 겨울 궁전이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몰려가 노동조합 설립 및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차르는 무력으로 진압하여 1월 22일 하루에만 수 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결국, 이 무력진압은 러시아 제국 전역에 걸친 항쟁의 도화선이 되고 그 해 5월 전함 포템킨 호 해병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 대목은 1925년 세르게이 감독이 연출한 <포템킨 호의 반란>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화에서 필수가 되는 몽타주 기법의 명장면이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한국에서는 1990년대 까지 상영되지 못했다.)
1905년 시작된 러시아 혁명은 1917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완성하게 되는데, 러시아 혁명의 와중인 1912년, 크렘린 궁 앞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이 기마병들에게 살해되는 장면을 오마 샤리프의 표정 연기로 그려낸 영화가 닥터 지바고(데이비드 린 감독)이다.
1905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작은 유대인 마을에 딸만 다섯을 둔 딸 부잣집이 있었다. 수다쟁이 아내와 함께 우유장수 테비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가난한 재봉사와 결혼하겠다는 첫 딸의 고집에 꺾인 테비는 내키지 않는 결혼을 허락하지만 결혼식마져 둘째 딸 애인인 급진파 청년을 잡으러 러시아 경찰이 들이닥쳐 난장판이 된다. 셋째까지 러시아 놈팡이와 눈이 맞아 결혼하겠다고 나서고… 그때 당시 불어닥친 러시아의 혼란한 정국이 결국 이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유대인 퇴거라는 태풍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데…
솔로 알레이쳄의 자전적 소설인 [테비와 그 딸들]을 1964년 9월 미국 임페리얼 극장에서 조셉 스타인이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무대에 올렸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1967년 공연됐다.)
당시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와 막 영국에서 건너온 리버풀 촌놈들로 구성된 비틀스에 의해 몰락 위기에 처해있던 뮤지컬이 다시 브로드웨이를 비상하는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은 미장센(Miss-en-scene 불어로 무대장치, 제한된 화면 안에서 상징을 통한 의미 전달, 동적 편집화면을 통한 몽타주 기법이 러시아 영화에서 발전했다면 화면구성 기법은 프랑스 영화에서 핵심요소가 된다.)이라는 용어가 일상에서도 사용되었지만 러시아 출신의 무대미술가인 ‘보리스 아론슨’이 꾸민 황혼의 결혼식 장면의 미장센은 조명과 함께 명작 중의 명작으로 회자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인 유대인 테비의 유머를 통해 비치는 파토스(페이소스, pathos- 예술 작품에 담긴 고통을 통한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동감?) 가 1971년 노만 제이슨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화의 첫 장면은 수탉 울음소리와 함께 해가 떠오르고 한 사내가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하고 주인공 테비가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마을 유대인들은 위험한 지붕에서 유쾌한 곡을 연주하는 저 사내와 같습죠. 전통을 통해 위험한 삶의 균형을 잡아간다고나 할까요.”
유대인에 대한 천대는 히틀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2천년 동안 나라 잃은 설움을 세계를 떠돌며 당했던 것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익스피어 또한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로 샤일록이라는 유대인을 등장시킨다.
'지붕위의 바이올린' 과 시대적 배경이 같은, 당시 조선의 역사를 그려낸 작품이 조정래의 ‘아리랑’이다. 동학 농민운동(1894)의 실패와 일제 강점기를 전라북도 김제땅을 배경으로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작품이다. 2015년 한국의 신시컴퍼니에서 ‘아리랑’을 뮤지컬로 올렸다.
‘아리랑’이든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든 세계적 작품이 되기 위한 그 공통점은 전통이라는 주제가 아닐까? 해외 이민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전통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할 일일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삶에서 자아관과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전통이 유머를 간직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유머를 통하지 않고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카아슨 메켄러즈>
박필립 칼럼리스트(www.facebook.com/thamespark)
굿모닝런던 발행인
영국 안중근청년아카데미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