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캥거루족이 늘었다는 기사가 또 나왔다. 영국 캥거루족 증가 소식은 자주 접하는데 영국에서 젊은이들의 주거행태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 1996년이니까 그때부터 수치로 이들을 걱정하게 된 것이다.
사실 영국에는 '캥거루족'이라는 단어가 없다. 한국에서 만든 말이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에게 전적으로 자신의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영국에서는 '키퍼스(kippers)'라 부른다. 부모의 퇴직연금을 좀먹는 사람(Kids in Parents'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의 줄임말이다.
일본의 패러사이트 Parasite 싱글(부모에게 기생 Parasite해서 사는 독신 single을 가리키는 용어), 미국의 트윅스터(중간에 낀 세대 betwixt and between)도 유사한 말이다. '연어족', '빨대족' 같은 말도 있다. 연상하는 의미 그대로다.
영국에 캥거루족이 많아지는 이유는 당연히 취직이 어렵고 주택을 사거나 빌릴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영국 캥거루족이 490만 명이라고 한다. 나이대를 조금씩 달리하지만 2012년 통계를 보면 영국 2040세대 가운데 캥거루족이 160만 명이었다. 영국의 20-40대 젊은이 중 160만 명 이상이 주택을 구매하거나 빌릴 수 없어 부모와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10년이 채 못 돼 몇 배나 증가했나?
앞서 청년들의 주거행태를 처음 조사한 것이 1996년이라고 했는데 당시 평균적으로 연봉의 2.6배를 내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50만 파운드 가치의 집을 사려면 연봉이 20만 파운드 정도 돼야 한다는 말이다. 연봉이 그만큼 되는 젊은이가 지금 얼마나 될까. 임금은 오르지 않고 집값은 날았다는 뜻이다.
영국은 젊은이들이 가능하면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는 사회다. 본인은 적극적으로 독립하려 노력하는데 실업률 증가와 같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사회 진출이 어렵고 부모 집에서 나와 살기가 힘든 경우는 캥거루족으로 불러서 안된다.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도 굳이 부모에게서 독립할 필요가 없어서 독립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부모와 함께 산다고 무조건 캥거루족 통계에 넣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도 많다. 그래서 캥거루족이라는 용어를 건축업자들이 일부러 더 퍼트린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다.
솔직히 한국 입장에서 영국의 캥거루족을 걱정하는 것이 코미디이긴 하다. 최근 조사를 보면 영국인은 평균 32세에 첫 집을 마련한다. 10년 전에는 29세였다. 그런데 한국은 2020년 기준 40세 다돼서야 첫 집을 마련했다.
어쨌거나 캥거루족의 증가는 '성장이 멈춘 20-30대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주택 위기, 취업 절벽이 젊은이들의 포부를 망가뜨리며 캥거루라는 억울하게 왜곡된 이미지의 동물까지 만들어 냈다. 안타까운 젊음의 초상 肖像이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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