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헤럴드 단상

런던에 등장한 유척(鍮尺)

hherald 2021.11.08 16:53 조회 수 : 4664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춘향테마파크'에는 춘향전에 나오는 내용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전시한다.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 고문당하는 모습도 있는데 묶인 채 정강이를 맞고 있다. 죄인을 문초할 때 쓰는 형구가 신장(訊杖)인데 손잡이 지름이 2.2cm 정도로 둥글지만 치는 부분은 너비가 2.5cm, 두께 6mm로 넓적하게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춘향테마파크에는 그냥 둥근 몽둥이로 고문하고 있다. 이를 본 어느 사학자는 "(수청을 거부해 독이 오른) 변학도가 신장 규격을 제대로 지켰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규정에 맞게 복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조선 시대에는 죄인을 때리거나 고문할 때 사용하는 형구의 규격이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지방 수령이 제 맘대로 아무거나 갖고 죄인을 때리고 고문하고 벌하지 못하도록 형구 크기를 법으로 정했다. 여자는 속옷을 입힌 채 물을 뿌리고, 남자는 아랫도리를 모두 벗기고 볼기를 치는 태형과 장형에 쓰이는 회초리도 세밀하게 달랐다. 그나마 가벼운 형벌로 분류되는 것이 태형과 장형인데도 사용하는 형구가 달랐다. 둘 다 길이는 1m 정도지만 태(笞)는 지름이 8mm, 장(杖)은 1cm로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춘향테마파크에서처럼 지방 수령이 사심으로 규정보다 강한 처벌을 내려 아무 형구나 갖고  때리고 법에 따르지 않은 형구를 사용하면 감시 대상이 됐다. 

 

춘향전의 이몽룡도 암행어사인데 주로 암행어사들이 이런 사실을 적발하고 단속하러 다녔다. 그래서 암행어사들이 반드시 들고 다니던 두 가지가 마패와 유척(鍮尺)이었다. 마패야 말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표시하는 것으로 잘 아는 바인데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를 말한다.

 

암행어사는 마패와 함께 유척을 들고 다니며 지방 관리의 부정과 잘못을 감찰했다. 정확하고 통일된 도량형을 사용하느냐 감시하는 것이다. 죄인을 벌하는 몽둥이의 크기와 굵기를 재는 것뿐아니라 세금으로 쌀을 걷거나,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나눠줄 때 악독한 지방 관리가 됫박의 크기를 바꿔가며 백성을 속이거나 착복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용도로 유척을 사용한 것이다.

 

지난 11월 1일 런던에서 한국경제 설명회(IR)가 있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HSBC, JP모건, 슈로더, 골드만삭스 등 런던 주재 주요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 임원을 대상으로 한국 경제의 저력과 탄탄한 회복력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해외 투자자들에게 조선 시대 암행어사가 항상 지니고 다녔던 마패와 유척을 선물했다. 홍 부총리는 "유척은 암행어사가 갖고 다니는 형평과 공정의 척도였다"며 "공정, 형평, 정의는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이자 정부를 운용하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보면 유척이란 가난하고 힘든 백성을 더 힘들게 하지 못하도록 막고 아무리 죄지은 백성이라도 죗값보다 더한 심한 고초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유척은 부정부패를 막는 도구였다. 공정, 형평, 정의가 우리나라만의 중요한 가치이고 기준일까. 런던에 등장한 유척이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보인다.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