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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한인헤럴드의 행복한 책임

hherald 2020.08.11 14:30 조회 수 : 7604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는 2차대전이라는 전쟁에 갇힌 세계 상황을 전염병이 발병해 봉쇄된 도시에 빗대 쓴 작품인데 시간의 차이가 있는데도 코로나 19에 갇힌 지금 모습과 너무 닮아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대미문의 재앙에 처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소설 속 부조리와 너무 닮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페스트의 죽음의 공포는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코로나 19의 공포와 같다. 처음 발병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피해를 키운 방역 당국의 모습, 가게마다 물건을 사려고 늘어선 긴 줄, 생필품 가격이 오르고, 사재기로 모든 것이 '매진'되고, 관광산업이 죽고, 경제가 멈추고, 인간의 죄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샀다는 성직자의 설교까지 소설은 지금의 현실을 예견한 듯 많이 닮았다.
신문을 만드는 것이 직업인 나 자신도 소설 <페스트>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소설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나온다. 소설 속 언론은 올바른 정보 전달보다 신약 광고에 빠져 잘못된 정보를 주고 사람들은 그 정보를 믿고 전염병에 전혀 효과 없는 술과 약품을 사려고 난리다. 코로나 19의 공포 앞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언론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대로 구분하라고 소설을 통해 까뮈가 내게 말하는 듯 하다.

 

흑사병과 코로나 19의 위협은 죽음의 공포다. 가장 큰 공포다. 까뮈의 <페스트>는 죽음의 공포 앞에 드러난 다양한 사람의 서로 다른 본성을 보여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지금 코로나 19의 공포 앞에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본 모습을 드러낸다. 역경과 고통이 닥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고 역경과 고통 속에서 본래의 모습이 나온다는 말처럼.

 

휴지나 소독제를 사재기하려 몸싸움하는 원칙과 질서가 무너진 현장을 만드는 이들이 있는 반면 서로 돕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나름의 질서를 찾으려는 이들이 있다. 전염병을 마주한 자세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만 안 걸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타인의 건강을 보호하고 타인의 행복을 지켜야 내 건강과 행복도 있다고 미담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인가. 헬렌 켈러가 말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모두가 힘들고 막막한 시기, 나는 과연 이 사회와 타인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이 되는 사람이었던가를 되돌아볼 계기가 있었다. 내 개인적 사례지만 뉴몰든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어느 광고주가 코로나 기간에 수고한다며 광고료가 아닌 별도의 격려금을 보내왔다.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을 하라는 충고인지, 며칠 뒤 오랜만에 나온 신문을 보고 기뻤다는 열독자라며 격려금을 보낸 이가 있다. 처음에는 집광고를 한다고 은행 계좌를 묻더니 그쪽으로 돈을 보낸 것이다. 그 밖에 이 기간에 일부러 광고해 준 이들도 많다. 쑥스럽게도 내 자랑이 됐는데, 역경의 시기지만 팍팍하지 않은 세상인심에 감동하는 날도 많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찾아보면 누구나 그처럼 감동할 일이 있지 않았을까.

 

잘하라고 감동을 줬겠지. 그렇게 갚아야 할 은혜가 많아 한인헤럴드를 계속 만들어야 하나 보다. 그것도 제대로 된 신문으로 만들어야 하나 보다. 그래서 역경의 시기에 드러나는 본성이 아름다운 신문을 만들자는 책임을 느낀다. 행복한 책임이다.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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