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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한인사회 원로이신 김장진 씨가 기억하기를 1968년(지금의 엘지, 삼성, 현대 등 대기업 주재상사가 영국에 한 곳도 없던 시절이다) 카도간 스퀘어에서 열린 한인회 망년회 및 총회에 기업인, 유학생, 교민 등이 모였는데 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백 명이면 당시 영국에 거주하는 한인 대부분이 참석했다고 할 수 있다. 제5대 배의환 대사 시절인데 대사관 직원 부인들이 김장해서 참가한 한인 모두에게 한 봉지씩 나눠줬다고 한다. 당시 대사관 직원이 몇 명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터 적은 수의 부인들이 모여 백 명분의 김치를 장만하기 만만찮았을 거로 짐작한다. 배추, 고춧가루, 무, 젓갈 모두가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김 회장은 아직도 그 시절 대사관 직원 부인들께 받은 김치 선물에 고마운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강북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정구선 씨의 기억에 따르면 1975년 윈저성에서 대사관(제7대 김용식 대사) 주최 모임을 했는데 30여 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자동차가 있는 한인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윈저성까지 대사관에서 차를 빌려 함께 이동했지만, 당시 유학생은 바빠서 이런 모임에 오기 힘들어 매번 한두 명 참석하는 데 그쳤다. 그 시절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을 한국에 두고 혼자 온 남자 유학생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약 어느 유학생 한 사람이라도 이 모임에 참석하면 그날 모임을 마치며 남은 모든 음식을 싸서 보냈는데 푸짐한 음식을 갖고 간 유학생이 음식 중 김치만은 가까이 있는 다른 유학생을 찾아가 나눠줬다고 한다. 정 전 교장의 기억 속 1970년대 영국 한인사회의 김치는 힘든 유학생들에게 용기를 준 귀한 선물이었다.

 

영국 대한노인회 부회장인 권오득 교수는 맨체스터에서 1980년에 처음 참전용사 위문 행사를 준비했다. 참전용사들과의 교류는 한표욱 대사 시절 시작해 다음 강영훈 대사 시절에 맨체스터 시청을 빌려 맨체스터 인근 지역에 사는 참전용사들까지 모두 초청한 큰 위문 행사를 열었다. 푸짐한 한식과 술을 준비하고 태권도 시범과 한국 관광 홍보도 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휴지통에서 김밥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김의 비린내와 찐득한 맛이 참전용사들의 입이 맞지 않았나 본데 이상하게도 쓰레기통에 김치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맛을 이미 알고 있었다기보다는 김치라는 음식의 의미를 그들도 알고 있었는지 40년 전에도 김치는 한국인과 영국인 모두에게 대접을 받던 음식이었다고 권 교수는 회상했다.

 

11월 23일 유럽 최대 한인타운이 있는 영국 런던 뉴몰든에서 열린 김장 축제 Kimjang Festival은 영국 사회단체가 한국 문화 알리기를 후원했다는 데서 또 다른 의미가 있으며 그 메인 테마가 '김장'이라는데 놀랍다.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김치가 아니라 김장이라는 우리 문화가 등재된 것은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를 전 세계인 함께 보존하고 전승할 문화로 삼자는 뜻이다.  

 

이번 김장 축제를 이끈 장정은 씨는 다문화가정의 한국인 주부다. 한국 문화 알리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그의 열정은 이미 유명하다. 축제는 하루로 보이나 이 행사는 9개월의 긴 여정을 거쳐 완성됐다. 20가지 남북한 김치 담그기 방법이 보존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장정은 씨가 이런 축제를 구상한 그 시작에는 마음속에 '나눔의 즐거움'이 있었고 그 즐거움을 진짜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영국 한인사회에서 김치에 얽힌 나눔의 즐거움은 이미 60년이 더 된 이야기다. 1960년대부터 있었던 나눔의 즐거움을 다시 불러온 축제, Kimjang Festival. 그래서 앞서 원로들의 레트로 Retro 김치 기억을 새삼 불러오고 싶었다. 나눔의 즐거움을 한 번 더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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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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