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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마약 먹은 템즈강의 장어

hherald 2019.05.06 16:42 조회 수 : 4473

 

몇해 전까지는 여름이 오면 템즈강에 낚시를 하러 자주 갔다. 한국 붕어나 잉어 비슷하게 생긴 어종이 주로 나오는데 가끔 장어가 물면 낚싯바늘을 워낙 깊이 삼켜 처리하기 힘들어 개인적으로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 낚시를 즐기던 지인은 '명당'이라며 템즈강에서 굵은 장어가 많이 나오는 포인트도 알고 있었다. 영국에서 민물낚시를 하려면 라이센서를 사야 하는데 1년에 30파운드다. 3월 15일부터 6월 15일까지는 산란기라 낚시가 금지된다. 그는 6월 16일이면 장어 잡으러 템즈강의 그 명당으로 간다. 30파운드 내고 노력한 만큼 비싼 보양식을 마련할 수 있으니 공평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런데 영국 하천, 런던 북쪽 지역의 하천에 살고 있는 민물새우에서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실험 발표가 있었다. 가장 많이 검출된 성분은 코카인과 같은 마약류라는데 마약을 한 인간의 배설물이 하천으로 유입돼 새우에게 들어갔을 거로 추측한다. 런던 곳곳의 하수도에서 템즈강으로 코카인이 유입돼 런던이 유럽 어느 지역보다 하천의 코카인 농도가 높다고 한다. 템즈강의 뱀장어도 멸종위기라는 연구가 있는데 마약인 코카인이 장어의 뇌, 근육, 아가미 등에 축적돼 움직일 수 없어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리니치 지역을 가면 '파이 앤드 마시'라는 음식을 파는 곳이 몇군데 있다. 파이는 소고기나 장어로 만들며 소고기 파이에 장어젤리를 함께 주는 메뉴가 가장 인기다. 런던 동쪽에는 이차대전 이전부터 장어 전문점이 많았다. 탬즈강의 장어는 전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 먹을 것이 귀했던 런던 시민의 주요 단백질 보충원이었다. 

 

런던 동쪽 이스터 런던은 산업혁명 당시에도 공장 노동자가 많이 살았다. 이들은 이때부터 장어를 즐겨 먹었는데 산업화로 오염된 템즈강에 다른 물고기는 다 죽고 생명이 질긴 장어만 살아남아 가난한 노동자에게 단백질을 제공했다. 이것이 런던 토박이 서민음식 장어파이다. 으깬 감자랑 먹는 파이 앤드 마시를 파는 전문점이 그리니치 마켓 근처에 있는데 1800년대 열었다는 간판을 달고 있다. 장어젤리 전문 식당은 과거 런던 곳곳에 많은 체인점도 갖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몇곳 남지 않았다. 장어젤리는 영국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즐겨 찾는 보양식으로 유명해졌지만 비주얼이 좀 그랬는지 호평은 드물다. 

 

1977년 템즈강에서 물고기가 잡혔다고 온 세계가 호들갑을 떨었다. 100년만의 기적이었다. 과학자들은 1850년에 템즈는 이미 죽은 강이라고 했다. 그들이 버린 배설물로 템즈를 죽인 런던시민은 각성했고 대대적 정화운동을 벌여 다시 템즈를 살렸다. 식수로 다시 사용하게 됐을 때 이를 '템스강의 기적'이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마약이라는 또 다른 배설물로 템즈강의 장어를 죽인다니 인간의 욕망에 멍드는 강의 운
명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노랫말처럼 참으로 퍼렇게 퍼렇게 색 진한 멍이 든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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