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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리벤지포르노와 집단 관음증

hherald 2018.10.08 16:13 조회 수 : 1703

 

2013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여배우 지망생이었던 19살의 여고생 스즈키 양이 살해당한다. 범인은 그녀와 사귀었던 옛 남자친구.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사이였는데 얼마 지나 여자가 남자에게 결별을 요구했고 전화도 착신 거부를 했다. 남자는 '죽이겠다'는 등 협박성 문자를 보냈고 급기야 남자가 살던 교토에서 여자가 사는 도쿄로 올라와 그녀의 주변을 배회하는 스토커가 됐다. 사건 당일 아침에는 스즈키 양이 부모와 함께 경찰서에 가서 이 문제를 알렸다. 그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스즈키 양은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고 알렸다. 그런데 그 시각 앙심을 품은 그 남자는 집에 몰래 침입해 벽장에 숨어있었다. 스즈키 양은 현관에서 목과 복부 등에 칼을 맞고 도로로 도망치다 사망했다.

이 사건이 일본을 들썩이게 한 것은 피해자가 10대인 데이트 폭력에 의한 살인 혹은 충격적인 사건이어서가 아니라 리벤지포르노 Revenge Porn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게끔 한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살인자는 사건 바로 뒤, 그러니까 살인을 하고 1시간 40분 뒤에 인터넷 게시판에 스즈키 양과의 성행위 동영상을 올린 것이다. 스토커를 하는 동안에도 두 차례 정도 올렸다는데 헤어진 연인이 복수심에 유포한 성행위 영상이나 사진이 리벤지포르노라면 이 경우는 살해한 옛 연인을 인터넷상에서 처참하게 한 번 더 죽인 것이다.

살인자야 논외로 하고 이 당시 살인자가 유출한 스즈키 양의 성행위 동영상을 소비한 군상들의 태도를 꼬집어야 한다. 집단 관음증. 19살의 여고생의 억울한 죽음은 전혀 주목받지 않고 배우 지망생이라 예뻤고, 미성년자라 희소성이 있고, 작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성행위 동영상이라 더 열렬히 찾아다니던 군상들. 글로벌 야동 사이트에 올려진 이 동영상을 소비하는 한심스러운 일본 네티즌들은 오히려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조용히 사건을 덮고 싶었던 유족의 가슴을 더 후벼팠는데 고인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측은 거의 없고 미성년자가 술도 마셨으니 행실을 알만하다는 등 부정적인 신상털기를 오히려 즐겼다. 직접적인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다고 관음증을 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가 된 이들에 따르면 '죽어버릴까' 생각하지만(실제로 자살한 여성들이 많다), 영상 속 인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유작이라고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고. 전문가들은 리벤지포르노라는 말도 잘 못됐다는데 포르노가 아니라 일종의 피해를 촬영한 것인데 이를 소비하는 이들은 단순히 야동의 하나로만 본다는 것이다. '리벤지'라 할 이유가 없고 '포르노'를 찍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요즘 어느 걸그룹의 가수의 리벤지포르노가 화제다. 엄벌을 처하라는 국민 청원이 쏟아진다. 처음에는 여가수가 전 남친과 누가 더 많이 때렸느냐로 다투는 줄 알았는데 이제 리벤지포르노까지 나오니 왜 그녀가 남친 앞에서 무릎을 꿇었는지 알겠다는 말들을 한다. 놀라운 것이 우리나라는 2013년 성폭력 특별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동의받고 찍은 나체사진, 성행위 동영상 등을 유포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엄벌을 처하라는 청원과는 별개로 '그래도 보고 싶다'는 집단 관음증이 스멀거린다.

'그러게 행실을 똑바로 했어야지'라고 하며 한편으로 이를 찾아다니며 소비하는 집단 관음증은 폭력이다. 리벤지포르노를 유출하는 행위는 살인이다.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헬러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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