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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가나 선수단이 입장할 때 이를 중계한 MBC의 자막에 <가나, 수도 아크라, 인구 2,042만, 예수가 최초로 기적을 행한 곳>. 예수가 기적을 행한 가나Cana는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 나사렛 인근이라 아프리카의 가나Ghana와는 너무 멀다. MBC의 황당한 실수였다.

예수의 첫 기적이 있었던 '가나의 혼인 잔치'(가톨릭에서는 원음을 살려서 '카나의 혼인 잔치'라고 한다)는 복음서 중 요한 복음서에만 나온다. 요한 사도는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이 기적을 첫 번째 기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예수가 어릴 때 했던 여러 가지 기적, 예를 들면 죽은 새를 살려 하늘로 날렸다, 죽은 고기를 강에 던지니 헤엄쳤다, 지붕에서 떨어진 친구를 살렸다, 사자와 친구처럼 지냈다, 발을 다친 어른을 고쳐준다, 등이 적힌 모든 기록은 위경(가짜 경전)이 됐다. 

첫 번째 기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기적이 있었던 가나가 과연 정확히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늘 말이 많았다. 기독교 순례자는 예나 지금이나 가나를 방문한다. 지금 짜인 코스에는 나사렛 북동쪽 6.5km 지점에 있는 ‘카프르 가나’를 간다. 그러나 성경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예전부터 나사렛 북쪽 14km 지점에 있는 '키르벳 가나'를 더 유력한 장소로 봤다. 그런데 며칠 전 키르벳 가나의 어느 잡초 무성한 동굴에서 예수를 뜻하는 그리스어 기호와 십자가 문양, 예수의 기적을 묘사한 항아리 조각, 항아리를 놓는 받침 여섯 개 등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 동굴이 5~6세기 기독교 순례자들이 예수의 기적을 찬양하려 모인 곳이라고 판단하며 키르벳 가나가 성경 속 가나와 딱 맞아떨어지는 장소라고 했다. 

지금 순례 코스에 들어있는 카프로 가나는 성경 속 가나와 동떨어진다는 주장이 있는데도 계속 가나인 듯 대우를 받는 것은 프란시스코 수도회가 갈릴리에서 카프로 가나로 이어지는 순례코스가 접근성과 관리가 쉬워 자의적으로 결정했다는 주장이 있다. 사실이라면 진짜 가나에는 순례객 발길조차 없고 모두가 엉터리 가나에서 예수의 첫 기적을 축도하고 있었던 셈이다.

키르벳 가나가 진짜 가나라는 합리적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카나'는 히브리어로 갈대라는데 키르벳 카나는 갈대가 있지만, 카프로 가나에는 갈대의 흔적도 없다. 가톨릭 프란치스코회에서 유적을 발굴했는데 카프로 가나에는 로마 시대의 유적이 없어 예수가 살았던 시기에 유대인 마을이 없었다는 뜻이며 키르벳 카나에서는 십자군 시대 순례자들이 남긴 낙서와 기원전 1세기 무렵 농촌 마을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돌무덤, 욕조, 물항아리 등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예수의 첫 기적을 향한 순례 여정이 곧 바뀌겠다. 예수의 첫 기적, 가나의 혼인잔치를 얘기하면 늘 생기는 의문이 왜 그런 기적을 시골마을 장삼이사의 결혼식에서 행했을까 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더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을 텐데. 기적의 장소조차 이제야 드러내는 데도 어떤 뜻이 있는 걸까. 더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난 오늘날 한국 대형교회와 예수는 역시 너무 다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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