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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이베리아반도의 돼지

hherald 2018.08.20 16:32 조회 수 : 443


스페인은 EU 최대 양돈 국가다. 2015년 12월에 그전까지 1위였던 독일을 제치고 1위가 됐다. 당시 사육두수가 2,837만 마리였다.(한국 양돈타임스의 발표) 그런데 이 통계가 잘못됐는지 올해 5,000만 마리를 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스페인 환경부 자료를 인용해 2013년 이후 약 900만 마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2013년에 이미 4,000만 마리가 넘었다는 셈인데 어쨌든 중요한 건 인구 4,650만 명에 돼지는 5,000만 마리가 넘으니 심각한 환경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스페인인들의 못 말리는 돼지고기 사랑을. 스페인 음식은 돼지고기를 빼고 말하기 어렵다. 스페인 요리 셰프들은 대부분 최고의 음식 재료로 돼지고기를 꼽는다. 주로 도토리를 먹고 자란 이베리아 흑돼지로 만든 말린 햄, 하몽 이베리코, 흰 돼지로 만든 하몽 세라노, 이베리아 반도에서 유래한 다양한 종류의 돼지고기 소시지인 초리소 소시지, 세고비아의 구운 새끼 돼지, 애저 요리인 코치니요 아사도 등 돼지로 만들어진 유명한 요리와 식자재가 많다. 그러니 돼지를 많이 키울 수밖에. 스페인 양돈 산업 관련 매출이 한 해 7조 원이다.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에서 돼지고기는 또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은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슬림이 1492년에 그라나다가 함락될 때까지 800년이나 지배했던 땅이다. 이슬람이 지배할 당시 유대인도 이베리아반도에 많이 살았는데 이슬람은 종교가 다른 이들에게 관용 정책을 썼다. 그러나 이베리아반도를 되찾은 스페인 왕국은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종교 재판을 해 산 채로 화형을 하는 등 이민족에게는 공포였다. 

이슬람은 할랄과 하람이라는 음식문화와 관련된 규정이 있다. 할랄은 허락된 음식이며 하람은 금기 식품이다. 코란에 나오는 무슬림의 하람 푸드 규정에 돼지고기가 있다. 또한 유대인도 음식문화와 관련된 규정이 있다. 유대교에서는 발굽이 갈라지거나 되새김질하는 동물만 먹는다. 그런데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다고 하니 유대인들은 돼지를 혐오 동물로 간주했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스페인 왕실은 유대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들이 여전히 유대교 관습을 지킨다고 생각해 종교재판을 통해 이들을 색출하려고 했다. (스페인 왕실은 유대인의 재산을 뺏고 쫓아낼 욕심이었다) 개종한 유대인들은 진정 개종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한 방법이었다. 지금도 당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던 톨레도와 세고비야에는 생후 2주 된 새끼 돼지를 통째로 구운 요리, 코치니요 아사도가 유명하다. 개종한 유대인들이 이를 공개석상에 먹음으로써 개종을 알리는 풍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무슬림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개종했냐 아니냐를 가리는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돼지고기를 먹어야했다. 유대인과 무슬림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먹여야 했던 고기가 돼지고기였으며 그 이전 무슬림 식민 아래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인들이 지배 세력에 저항으로 먹었던 고기가 돼지고기였다.

오늘날 돼지 마릿수가 많아지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온실가스 생산 배출 때문이다. 소나 돼지를 키우는 축산은 인류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면서 다른 한편 지구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고 돼지가 무슨 죄가 있을까. 이베리아반도의 돼지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인간의 문제는 세월에 따라 내용만 바뀔 뿐 여전히 걱정이 그치질 않는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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