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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올해 삼복三伏 더위가 대단하다. 일년 중 무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시기라 삼복더위라는 말이 생겼는데 올해 초복은 7월 17일, 중복은 7월 27일이었다. 복날은 통상 10일 간격이라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럼 올해 말복은 8월 6일이어야 하는데 올해는 중복과 말복 사이에 입추가 있다. 말복이 입추 뒤에 오면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된다. (이를 '월복'이라 한다) 그래서 올해 말복은 8월 16일이다. 유독 삼복더위가 심한 올해, 삼복의 날짜도 길다. 

 

 

포르투갈 리스본 시민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민이 삼복더위라는 말은 몰라도 제대로 된 삼복더위를 지금 막 견디고 있다. 이런 더위 처음이라는 듯 헉헉대는데 기억나지 않겠지만 유럽은 5000만 년 전 열대기후였다. 유럽 도시 곳곳에 폭염 최고등급인 적색경보가 내려지고 있는데 이런 농담을 하자니 멋쩍다. 그나마 영국은 양호해서 28도 정도인데 한국의 지인에게 덥다고 전화했다가 웃음거리가 됐다. 40도가 넘는단다. 우리나라에 현대적인 기상관측 장비가 도입된 20세기 초반 이래 40도를 돌파한 적은 1942년 8월 1일 대구의 40.0도가 유일했다는데 이번에는 41도까지 올랐다. 

 

 

해방 전 일제 폭정이 한창이었을 1942년 여름, 조선의 대구에서는 연일 가온이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가난하고 힘 없는 서민 피해자가 무척 많았을 것이다. 1987년 그리스의 여름은 최고 기온이 46도까지 올라 한 달 넘게 이어졌고 1천 명이 넘게 더위로 사망했다. 1987년의 유럽에서도 불볕더위에 서민이 죽어 나가는데 그시절 식민지 조선의 서민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올해 76년 만에 그해 기록이 깨졌다. 
 
폭염은 재앙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이다. 그 중에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유난히도 위협하는 재앙이다. 2003년 8월 유럽의 기온은 보통 40도. 더 올라간 곳도 많았다. 8개국 7만 명이 사망했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곳이 프랑스. 대부분이 가난한 독거노인들이었다. <과연 우리가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탄식이 나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그러니까 폭염에 잘 대비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다.

 

공교롭게도 폭염이 심한 곳의 국가들이 지구상 최빈국에 속하다 보니 폭염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서유럽에서 산업 혁명이 일찍 발달하고 잘 살게 됐을 거란 주장이 있다. 기후 조건이 좋아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고 사회를 발전시켰다는 논리인데 글쎄, 지금 그런 논리를 들먹여 도움이 될까. 아무튼 더위가 재앙이 되는 사람이 없도록 폭염에 잘 대비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 거란 생각이다.  

 

 

폭염이다, 폭서다, 퍼붓는 더위를 이렇게들 표현하는데 국립국어원에서는 '불볕더위'로 순화해 사용하자고 한다. 순화해 말해도 덥긴 매한가지다. 이 불볕더위의 위험에 노출된 이웃은 없는지 살펴보는 시원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한 삼복, 여름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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