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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단식斷食과 단식투쟁

hherald 2018.05.07 17:55 조회 수 : 480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을 촉구하며 단식을 한다. 그는 다 보는 데서 하겠다며 국회 본청 계단 앞을 단식 장소로 잡았다. 그러자 재미있는 것이 김 대표 단식 투쟁 장소에 24시간 관찰 카메라를 설치해달라는 국민 청원이 등장했다. 청원자는 "진짜로 노숙하며 단식투쟁을 하는지 국민들이 항상 지켜볼 수 있도록 24시 관찰 카메라 설치를 부탁한다"고 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당대표였던 2016년 10월,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을 했다. 단식 장소가 국회 당대표실. 문을 걸어 잠그고 누워서 하는 비공개 단식이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사면초가의 상황, 그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그가 국정감사를 피하려 꼼수로 단식을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비공개 단식을 누가 믿느냐, 몰래 뭘 먹는 거 아냐, 라는 웃음거리가 된 단식은 건강 문제라며 7일 만에 끝났다. 7일간 국정감사는 피했다는 것이 당시 이정현 의원의 비공개 단식의 가장 큰 업적이다. 그걸 의식해 이번에 김 대표는 다 보이는 장소를 택했고 국민은 한술 더 떠 24시 관찰 카메라까지 설치해 달라고 했는지. 

 

 

단식은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다. 먹을 게 없어서 못 먹는 것은 단식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먹지 않아야 단식이다. 영어로 fasting. 다이어트나 의료 등으로 먹지 않을 경우다. 그런데 주로 정치적 이유로 단식을 하면 단식투쟁이 된다. Hunger strike, 뜻이 완전히 다르다. 종교적 이유로 단식투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은데 주로 정치적 이유와 결합된다. 

단식투쟁은 자신의 의지를 나타낼 방법이 거의 없는 약자가 행하는 저항 수단이다. 어떤 분쟁이 있을 때 단식투쟁을 하면 주목 받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별 영향력을 내보일 것이 없는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저항수단이다.

 

우리는 대체로 '억압받는 쪽은 정당하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다. 억압받는 쪽에, 약자에 마음이 더 가는 인지상정에 따라 억압받는 쪽이 더 정당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단식을 하게 만드는 대상보다 단식을 하는 이에게 어떤 정당성의 가산점을 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단식을 하는 걸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23일간 단식을 끝내면서 한 말이 "굶으면 죽는다"였다고, 죽을 수도 있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이유가 그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간디나 영국에 대항한 아일랜드의 바비 샌즈가 아직도 단식투쟁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되는 건 그들의 단식이  억압받는 입장에서 나온 순교자적 저항이었다는 이미지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단식투쟁이 아직도 다 그런 정당성의 가산점이 있지는 않은 시대에 왔다고 할까.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무엇을 원해서.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욕을 먹기도 하는 시대다. "원 애도 아니고", "왜 그러는지 속이 빤히 보인다"는 핀찬을 받는 단식도 있단 말이다. 얼마나 억울할까. 제딴에는 목숨을 거는 극단적 저항으로 보여지고 싶어 단식을 한다고 앉았는데, 혹은 누웠는데 이런, 속이 빤히 보이는 단식이라니. 그럴 경우 힘이 빠진다. 안되는 집은 뭘해도 안된다는 것이 밥을 굶는데도 나온다. 단식이 다 단식투쟁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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