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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윈저공의 유언장

hherald 2017.11.20 18:20 조회 수 : 2778

 

 

동화 같은 이야기,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 세기의 로맨스로 포장된 윈저공 에드워드 8세의 유언장이 죽은 지 45년 만에 공개된다고 한다. 왕립 문서보관소의 관계자가 유언장 열람에 대한 특별 허가를 고등법원에 요청했고 법원이 그 관계자에 한해서만 공개를 허락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특정인에게만 한정적으로 공개되는 것이라 무슨 내용이 담겨 있고 어떤 사실이 새롭게 드러날지 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를 계기로 윈저공 관련 얘기가 TV, 영화, 잡지, 언론 등에 한동안 오르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큰아버지인 윈저공은 에드워드 8세로 10개월 22일 동안 영국의 왕으로 재위했다. 미국인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려 1936년 12월 11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이 없이는 왕의 책무를 다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라는 퇴위 선언 연설을 했다. 그런데 원래는 퇴위하는 게 아니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 이혼녀와 결혼도 하고 왕위도 유지하려 했다. 처음 준비한 연설 내용은 "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는 왕으로서의 나에게 끊임없이 부과되는 부담을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심슨 부인과 나는 그녀가 여왕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저 내 아내로서 그녀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직함과 작위를 바랄 뿐"이라고 말하려 했다고 한다. 이 라디오 연설 원고는 당시 그의 유일한 지지자였던 윈스턴 처일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들 한다. 윈저공의 인기를 이용해 정치 재기를 꿈꾸던 처칠은 그를 열렬히 지지했다. 처칠에게는 흑역사다. 처칠도 나중엔 그들의 로맨스를 "저열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저열한 사람들의 사랑"이라고 비하했다.

 

멋쟁이로 평가 받는 윈저공과 심프슨 부인은 꾸미고 노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허영심에 낭비벽도 상통했다. 윈저공은 결혼 전부터 왕실 직원을 줄여 모은 돈으로 심프슨 부인 치장에 썼다. 망명 생활을 하다 동생 조지6세에게 "영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허락 없이 형이 돌아오면 생활비 지원을 끊을 것"이라 하자 못 왔다.

 

윈저공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유머감이 있어 영국 국민은 왕세자일 때 그를 사랑했지만 훗날 보인 그의 정치적 견해나 행태를 보면 차라리 그가 왕위를 버린 것이 잘된 것이 아닐까 짐작게 한다. 솔직히 왕으로서의 역량은 바닥이었다고 곧잘 평가된다. 왕이 되자마자 파시즘과 히틀러에 대해 호감을 표현할 정도였고 퇴위 후에도 영국 왕실의 골칫거리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 지지자로 살고 히틀러와 개인적 친분도 가진다. 그래서 독일군의 영국 침공을 이용해 왕위 복귀를 노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독일이 그를 영국으로 보내서 다시 왕위에 올리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몰지각한 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데 2015년에는 그가 당시 7살이던 엘리자베스 2세에게 나치식 경례를 시키는 동영상이 나왔으니... 정치적 감각이 문제가 있는지 훗날 미국에 가서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고 다니는 등 여러 사건이 있다.

 

인종차별의 흑역사도 있다. 일본의 히로히토가 왕자이던 시절 영국을 방문했을 때 비하하는 행동을 했고 애인에게 쓴 편지에 히로히토를 고급 원숭이라  표현하고 일본인들이 토끼처럼 빠르게 번식한다고 놀렸다. 그런데 일본 방문 당시에는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일본 전통복장을 한 사진을 남겼으니 인종차별이나 덜떨어진 정치 감각이나 모두 철없는 데서 나왔다고 보인다. 

왕관도 버린 세기의 사랑인가, 이적 행위로 왕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철부지였는지 이래저래 그의 유언장 내용이 궁금하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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