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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11월 11일

hherald 2017.11.13 19:23 조회 수 : 62

 


지난달 31일 핼러윈 데이Halloween Day는 한국으로 보면 수입 기념일이다. 나 같은 386세대는 젊은 시절에도 이런 기념일까지는 잘 몰랐다. 행여 이런 수입 기념일을 알고 챙기려는 친구가 있어도 '문화 사대주의'에 빠진 놈이라고 욕했을 거다. 그런데 올해 한국 소식을 보니 역시나 이런 날까지도 기념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대기업 특급호텔들이 번쩍거리는 이벤트를 마련하곤 놀러 오라고 유혹하는 걸 봤다. 워낙 격세지감이 커 굳이 비뚤어진 상혼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젠 촌스럽다.

 

 

핼러윈 데이 지나니 금방 11월 11일. 연애하는 젊은이들 참 바쁘겠다. 한국 부산의 어느 여고에서 유래했다는 빼빼로 데이로 알려져 있는데 몇 해 전에도 단상을 통해 알렸는데 이날은 한국의 법정기념일인 '농업인의 날'이다. 11월 11일이 막대 과자의 모양처럼 생겼지만 11의 한자 십十과 일一을 합치면 흙을 뜻하는 토土가 된다. 토자가 겹치는 토월토일土月土日이 되는 셈이다. 11월이 되면 농업인이 일손을 놓고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계절적 요인도 고려해 기념일을 삼았다.

 

 

농업인의 날과 더불어 이날은 '가래떡 데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소비 촉진과 홍보를 위해 11월 11일이 우리 전통 흰떡인 가래떡을 4개 세워 놓은 모습에 착안해 가래떡 데이로 정해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가래떡 데이는 원래 지난 대선 후보였던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만든 안철수연구소에서 사내 기업문화 활성화 차원으로 빼빼로데이에 빼빼로 대신 가래떡을 먹자는 것이 2003년부터 연례행사로 이뤄지다가 정부 행사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니까 가래떡 데이의 유래는 안철수연구소다.

 

 

11월 11일은 기념일이 여럿 겹친다.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지체장애인들이 자기 자신을 최고(1)로 소중히 여기고 숫자 1처럼 힘차게 일어서서 다른 지체장애인(1)들과 하나(1)로 단합하자는 의미>라고 한다. 이런 기념일의 의미는 대충이라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옮겼다. 국토교통부에선 사람 다리 모양과 닮았다고 '보행자의 날'로 했고 코레일은 철길 모양을 연상했는지 '레일데이'로 했다. 11월 11일은 이밖에도 기념일이 많다.

 

 

모두 알다시피 영국의 11월 11일은 리멤버런스 데이Remembrance Day, 영국의 현충일이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날을 기념해 전쟁에서 희생된 영국인을 기리며 종이로 만든 양귀비꽃을 다는 포피데이Poppy Day. 국민적인 보훈 행사는 11월 11일과 가장 가까운 둘째 일요일, 리멤버런스 선데이Remembrance Sunday, 말하자면 영령기념일에 극에 달한다.

 

우리 고유의 날이 사라지고 상혼으로 만들어진 기념일들이 유행하는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일까. 하지만 영국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면서 11월 11일 하루만이라도 빼빼로데이에 들뜬 자녀에게 전사자를 기념하는 빨간 포피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한번 되새겨보라고 권하는 것이 이 나라 보훈 문화에 대한 하나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뜻도 많고 기릴 것도 많고 그래서 할 말도 많은 11월 11일은 지났지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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