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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2012년 12월에도 노인정 얘기를 했다

hherald 2017.07.10 19:29 조회 수 : 1310

 


얼마 전 대한노인회 영국지부 창립식에서 과거 노인회 회장이셨던 할머니께서 인삿말 대신 '영국에 노인정을 마련해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이 드니까 시간이 많은 데 노인정이 없어서 갈 곳이 없다며 창고라도 하나 마련해 주면 운영비는 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해보겠다고 하셨다. 참 절박한 당부였고 우리가 부끄러워 해야 할 얘기였다. 이날 참석한 대한노인회 중앙회 회장은 영국에서 어느 정도 정성을 보이면 한국에서도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노인정 문제는 자주 거론됐지만 말만 했지 노력한 적은 없다. 2012년 12월 30일 자 신문의 '헤럴드 단상' <올겨울에는 노인정을 한번 생각합시다>를 다시 싣는다

 

그리 먼 옛날의 얘기가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영국의 한인 사회에는 노인정이 있었다. 20여 분의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하고 음식을 나누며 여가를 즐기는 노년의 활기찬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단순히 점심을 해먹고, 화투를 치고, 한국 방송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는 공간이 아니었다. 여러 종교 단체에서 봉사자들이 나와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관사에서 직접 막걸리를 담아 온 대사가 명절 인사를 올리는 곳이었다. 한국학교 아이들이 재롱 잔치를 열고, 한국에서 영국으로 견학 온 학생들이 일부러 찾아 청소하고 위문을 하던 곳이었다. 거창하게 한국의 효사상을 논할 것도 없이 영국의 한인 노인정은 있는 그 자체로 한인 2세들에게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되었고 어르신들에게는 기쁨의 동력이 되었다. 

 

노인정이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한 인사와 단체를 살펴보니 대사관, 한인회, 민주평통, 한인경제인협회, 재영한인교회연합회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참 많았다. <방문해서 인사를 드리고 음식을 대접하고 떠날 때 금일봉을 전달했다>는 당시 기사도 많았다. 또한 머리를 손질해 주거나 건강 검진을 해준 노력 봉사도 많았고 자기가 운영하는 식당에 어르신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한 사례도 많았다. 노인들을 위해 단체 관광을 준비했던 협회도 있었다. 이렇게 어르신을 대접할 수 있었던 것도 효도의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며 노인정이라는 어느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인정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이 끊어진 지 2년이 됐다. 한국이라면 웬만한 아파트 단지에도 다 있는 노인정이 3만4천 명의 한인이 산다는 영국에는 없다. 노인정이 없어져 갈곳 없는 노인들은 서로의 안부조차 궁금한데 올 연말도 하릴없이 집만 지키고 있다. 노인정이 있을 때는 왕복 2시간 버스를 타고와 점심만 먹고 가도 그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는 어느 할머니는 이제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다.

 

노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노인정이다. 국회의원이나 시장 같은 선출직이 있는 곳에는 표를 의식한 이들이 수시로 노인정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는다. 그러면 노인정은 점점 더 좋아진다. 그런데 영국의 한인 노인정은 좋아지기는커녕 있는 것도 없어졌다.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 다시 마련해보거나 만들려는 노력이 아예 없다. 그렇게 노인들에게는 잔혹한 시간만 흘렀다. 어르신들이 직접 나서서 노인정을 만들어 달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노인정은 지금 한인사회에 있는 수십여 분의 어르신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분들이 바로 우리의 내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회에서 우리 2세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은 서로 소송을 하며 물고 뜯는 모습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절은 갖추고 사는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2세들은 우리가 노인정을 만들려 힘쓰는 것과 같은 제대로된 공동체의 질서와 예의를 보고 자라야 한다. 그래야 우리 어르신에게도 낙이 있고 우리에게도 내일이 있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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