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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문정왕후의 어보御寶가 돌아왔다

hherald 2017.07.03 17:10 조회 수 : 899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 방미 전용기편에 함께 미국에서 돌아온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 . 이중 2010년부터 변죽만 울리고 오지 않아 애태웠던 문정왕후 어보에 유독 관심이 가는 것은 반환까지의 얽힌 사연만이 아니라 문정왕후라는 인물의 드라마틱한 삶과 최근 국정농단이라는 치욕스러운 단어를 또 만든 한국사가 어보의 반환만큼 드라마틱하게 겹쳤기 때문이다. 어보의 반환은 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이 거둔 열매였는데 이제나저제나 이들의 노력을 비웃던 정부 기관은 정작 해결이 되니 자기 업적인 양 열매만 챙기는 모습도 판박이라 씁쓸하다.

 

 

한국전쟁 당시, 더 정확히는 9.28 서울 수복 당시 미군이 우리나라 박물관, 궁궐을 약탈한 수사 기록에 근거해 미군 병사가 훔쳐간 것으로 보이는 문정왕후 어보는 미국의 한국 고미술 수집가가 갖고 있다가 경매로 미국에서 팔았다. 기록을 찾은 시민단체는 어보가 불법 반출된 것이라고 계속 제기했고 미국 측에서 이를 수용해 2013년 9월 20일 돌려주기로 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문정왕후 어보 반환 운동은 한국 시민운동의 승리>라는 보도를 했다. 그대로 진행됐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중인 2013년에 문정왕후 어보는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도난품에 대한 수사로 미국 검찰이 어보를 압수해 환수가 늦어졌고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직접 들고 와 돌려달라는 이른바 ‘응답하라 오바마-왕의 귀환’ 작전까지 시민단체가 벌여 2015년 10월에는 한미 정상이 두 어보의 ‘조속한 반환 원칙’에 합의했지만 법적 절차의 지연 운운하며 또 미뤘다. 올 듯 오지 않고 미국에 떠돈 세월이 67년이다.

 

 

문정왕후 어보가 만들어진 것이 명종 2년(1547). 명종이 선왕 중종의 계비이자 어머니인 문정왕후에게 ‘성렬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라는 존호를 올린 것을 기려 금으로 만들었다. 어보가 만들어진 1547년은 14살의 명종을 앞세우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던 시기로 '양재역 벽서사건'이 일어난 해다. 그해 경기도 과천의 양재역에서 '위로는 여왕, 아래로는 간신 이기가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망할 것을 기다리는 격이다'라는 익명의 벽서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윤원형의 소윤파가 대윤파와 사람 세력을 제거한 양재역 벽서사건, 즉 '정미사화'가 발생했다. 익명의 벽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사건을 확대한 고의적 사화다. 최근 한국사에 비춰 묘한 기시감이 있다.

치나친 비약인가. 대비의 수렴청정, 외척 윤원형의 패악질, 윤원형의 첩 정난정과 승려 보우의 국정농단. 그런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만들어진 문정왕후의 어보라 그랬는지 지난 정부 때 올 듯 했으나 결국 반환되지 않았다. 문정왕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표독스러운 악후, 역사상 가장 영민한 왕비. 정치적 파란과 갈등에도 중궁의 자리를 굳세게 지켰다고도 하나 지나친 집권욕이 정치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역사적 기록에는 혹평이 많다. 굳이 변명하자면 가부장 사회에 여자가 정치에 나섰고 유교사회에 불교를 숭상했으며 서얼허통법과 같은 기득권의 특권을 위협하는 혁신도 펼쳤으니 당대 기득권 세력인 사대부에게는 곱게 보일 리 없지 않았을까.

 

문화제 찾기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서는 이번처럼 문화재를 찾아오는 것이 한 점의 문화재를 가져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 제자리 찾기라고 말한다. 문화재가 아니라 '제자리 찾기'가 중요하다는 게다. 어느 순간 분실하거나 망각한 정신을 찾는 것, 인간의 양심, 진실, 우리가 구현해야 할 사회, 이런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문정왕후의 어보가 돌아왔다. 어보와 함께 배우고 살펴야 할 역사의 교훈도 돌아왔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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