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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비뚤어진 모정

hherald 2017.06.26 18:28 조회 수 : 1262

 

2011년의 일이다. 그해 11월 11일에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싶다는 예약이 줄을 이었다. 1000년에 한 번 있는 1이 6개 겹치는 이 날 아이를 낳겠다는 산모가 많았다. 이날 태어나면 주민번호 앞자리가 111111이 되기 때문에 제왕절개까지 하겠다는 산모들은 길게 일주일까지 출산을 앞당겼다. 과연 주민번호가 중요했을까. 핸드폰 번호도 아니고... 궂이 순리를 어기면서까지 이날 아이를 낳으려던 산모의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해 이 소동을 <비뚤어진 모정>이라 표현했던 언론이 많았다.

 

2012년의 일이다. 고려대 의대생들이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해 실형이 확정된 사건이 있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3명의 남학생이 동기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추행한 사건이다. 이때 가해자 중 한 사람이 어머니와 함께 피해 여학생을 인격장애자라는 식으로 몰고 가 죄를 벗어나려 이상한 설문조사를 하고 피해자의 신원, 행실, 성격, 친구 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마치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는 듯한 내용의 허위 문서를 작성해 널리 퍼뜨렸다.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자기 살고 제 자식 살리려 남과 남의 자식은 안중에 없었다. 게다가 이런 허위사실 유포를 '정당한 방어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 어머니에게 <아들의 구명을 위해 저지른 것으로 정서적·감정적으로 납득하고 동정할 여지는 있지만 딸 가진 부모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보고 반성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며 1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비뚤어진 모정을 질타한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국민의 공분을 가장 많아 산 부분은 '정유라 입학·학사 비리' 사건일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인 공정성이 철저히 무너진 것이 입시 비리, 학사 비리다. 누군가에게 혜택을 주려고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23일 최순실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날은 마침 최순실의 생일이었는데 두 자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한 부장판사는 판결에 끝나지 않고 그녀를 꾸짖었다. 

 

이 판결문이 나오기 전 재판에서 피고인 신문을 받던 최순실은 정유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급기야 "나라에서 (정유라의) 희망과 꿈을 다 지운 것"이라 주장했다. 오히려 어린 학생들의 희망과 꿈을 다 지운 것이 정유라의 학사부정이며, 온 국민의 희망과 꿈을 다 지운 것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었는데 이런 적반하장이...

 

어머니 부장판사의 질타는 이랬다. <자녀가 체육특기자로 성공하기 위해선 법과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배려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과 주변 사람이 자신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그릇된 특혜의식이 엿보인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마음이라 하기엔 자녀에게 너무나도 많은 불법과 부정을 보여줬고, 급기야 비뚤어진 모정은 결국 자신이 아끼는 자녀마저 공범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최씨의 범행으로 인해 국민과 사회 전체에 준 충격과 허탈감은 그 크기를 헤아리기 어렵고, 누구든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으리란 믿음 대신 '빽도 능력'이란 냉소가 사실일지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생기게 했다>. '비뚤어진 모정'을, 똑같은 '부모의 마음'을 대변해 질타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은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최순실의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됐다. 그 점은 이해가 가지만 어처구니없다. 그런데 그 모정을 어떻게 쏟았나, 즉 최순실은 정유라를 어떻게 키웠나. 남의 집 욕한다는 게 참 묘한 거라지만 내 눈에는 진짜 자식 더럽게 키웠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비뚤어진 모정으로 잘못 키운 자식을 끝도 없이 밀어주려니 온갖 무리수가 다 나온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만 가르쳐 놓고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지 않으니까 딸이 선택하는 진로가 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하긴 최순실이 인간의 도리를? 누가 누구를 어떻게 가르칠까. 

비뚤어진 모정. 부모인 나도, 우리도, 자주 되돌아봐야 할 말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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