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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문신 文身 Tattoo

hherald 2017.06.12 17:19 조회 수 : 1307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당했을 때,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그의 시신 사진에는 청바지와 푸른색 상의 사이로 불룩한 배가 맨살을 조금 드러낸다. 자세하지는 않으나 문신이 보이지 않는다. 김정남은 일본 언론에도 ‘문신을 했다’는 인터뷰를 했다. 젊은 혈기로 했다는데 문신 때문에 야쿠자와 관계가 있다는 오해를 받곤 했다. 그런데 시신 사진에 문신이 보이지 않자 김정남의 시신이 조작됐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김정남은 복부와 왼쪽 팔뚝 등에 문신이 있다. 배에는 2마리의 잉어를 낚아 올리는 남자의 모습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 시신의 문신은 일치했다. 오히려 문신이 신원확인의 열쇠가 됐다.

 

 

문신으로 신원을 나타내는 실용적인 사용은 조난 당할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했다. 자신이 누군지를 알리려 일부러 문신을 새긴다는 뜻이다. 조난 후 사망해 시신 수습 시 누군지 쉽게 알 수 있도록 몸 여기저기에 특징적인 문신을 새긴 것이다. 비슷한 것이 나치의 혈액형 문신 Blutgruppentatowierung 이다. 독일의 악명높은 슈츠슈타펠 SS 소속 군인들은 겨드랑이 안쪽에 자신의 혈액형을 문신으로 새겼다. 부상을 입으면 의사가 혈액형을 쉽게 알아보도록 하려는 목적이었지만 독일이 패한 뒤 연합군은 SS 소속 군인을 색출하려 포로들의 겨드랑이를 먼저 확인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문신을 대체로 야만의 풍습으로 치부했고 때론 형벌로 사용됐다.  살갗을 바늘로 찔러 피부와 피하조직에 상처를 낸 뒤 먹물이나 물감을 흘려 넣어 피부에 그림, 무늬, 글씨 등을 새기는 것이 문신인데 중국에서는 죄인과 노예에게 새기는 낙인으로 사용됐다. 묵형 墨刑 이라고 이마나 팔뚝에 죄명을 먹물로 새겼다. 
우리도 고려부터 조선까지 묵형을 가했는데 연산군은 건물을 짓는데 끌려왔다 도망간 사람을 잡아 묵형을 했다. 내가 범죄자요, 하는 것을 얼굴이나 팔에 새기고 다니니 수치심을 주기 위한 것인데 요즘 실명공개나 전자발찌 격이다.

 

묵형이 수치심을 주는 비자발적 문신이라면 요즘은 제 좋아 제가 하는 자발적 문신이 대부분인데 이런 문신에도 나름 의미가 있다. 3개의 점은 갱 맴버를 의미하고 다섯 개의 점은 감옥에 갇힌 죄인을 뜻한다. 영국에서 손가락에 하나에 한 글자씩  A C A B 를 새긴 사람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All Cops Are Bastards 란 뜻으로 경찰도 우습게 본다는 갱들의 전문용어다. 그림도 의미가 있는데 거미줄은 감옥을, 잉어는 장수와 출세를, 김정남처럼 잉어를 끌어 올리면 권력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김정은이 보기에 김정남의 문신부터 꺼림칙했을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30대 아빠가 마지막 소원으로 어린 딸들의 발자국과 이름을 가슴에 문신으로 새기고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젊은 아내와 다섯 살, 두 살, 생후 8개월 쌍둥이 이렇게 네 딸을 두고 죽음을 맞게 된 아빠는 생명 유지 장치에 의지한 채 딸들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발자국 문신과 이름을 새겨 넣고 영면했다. 이 문신은 그의 평소 바램이었다.

 

어느 수녀님이 ‘가슴 찡한 자신의 역사를 몸에 새긴 이야기, 삶과 갈망을 몸에 기록하고 간직하고 있다’며 문신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쓴 글이 있었다. 그 글을 읽었을 때도 그랬는데, 뉴질랜드의 젊은 아빠가 영면하는 순간에 새긴 문신 이야기는 내게 문신은 단지 어떤 것이다,라고 재단 裁斷 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됐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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