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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영국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행복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걸 자주 느낀다. 성취욕에 불타는 일부 엘리트 말고는 보통의 영국인들은 업무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가볍게 넘긴다. 빈부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지 않는다. 나름대로 쌓은 자신의 유·무형의 성에서 어제와 오늘이 별로 다르지 않고 내일도 변화가 없을 듯한, 어찌 보면 지루하고 평범한 하루하루에 만족하면서 착실하게 살아간다. 과거(1980년대의 경우 5%)에 비해 지금은 엄청나게 늘어난 대학진학률도 아직 전체 고등학교 졸업생의 35%밖에 되지 않는다. 이 말은 청년들 중 3분의2가 소위 말하는 사회 계급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욕심이 없다는 뜻이다. 비록 하루하루 벌어 먹는 저임금 노동을 하고, 공장 기름때가 묻은 손으로 밥을 먹어도 영국인들은 자신의 삶이 비루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삶이 소위 말하는 고급 직업(영국인들은 이를 영어로 respectable job이라 부른다)을 가진 사람들보다 못하지 않다고 자부한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삶이 누구 못지않게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비록 돈은 많이 벌지 못해서 서민주택에 살고 중고차를 타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충분하고 거기에 대해 만족스러워한다. 돈을 많이 벌려면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희생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 그런 희생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인들은 태생적으로 이런 행복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듯하다. 영국인들의 이런 행복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를 일러 ‘체념적인 포기의 행복(The happiness of resigned abandon)’이라고 비꼬지만 영국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다. 
 
 
 
‘일에서 삶의 의미나 기쁨을 찾지 않는다’ 
 
 영국인들의 이런 삶의 자세를 지탱해 주는 가장 큰 요소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소확행(小確幸)이다. ‘영국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소확행이다. 한국인들이 언제부턴가 가지려고 무던히 노력해도 잘 안되는 소확행을 영국인들은 정말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영국인들이 소확행을 즐기는 제일 첫 번째 조건은 우선 일에서 삶의 의미나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인들은 ‘일은 일일 뿐이다(work is just work)’라고 생각한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은 원래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해서 고급직업을 가진 직업인이든 육체노동 직업인이든 모두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하나의 행위일 뿐 거기에 무슨 차별이 없다고 느낀다. 모든 직업인이 다 똑같은 직업인이라는 말이다. 기독교 정신에 근원이 있는 듯한 이 직업 철학이 바로 영국인들에게 행복을 주는 가장 큰 비밀이다. 저임금 직업인이 고급 직업인들 앞에서도 기 죽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이유이다.
 
거기에 더해 두 번째 조건은 영국인 모두가 자신만의 소확행 방법을 알기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행복감을 누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축구팬은 매 주말 자신의 클럽 경기를 펍에서 동료 팬들과 같이 모여서 보거나 경기장에 가서 고함 치면서 보는 즐거움으로 일상의 고달픔을 이겨낸다. 모든 영국인들은 자신만의 취미나 활동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 개인의 즐거움은 누구와 비교하지도 않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그래서 영국에는 다 셀 수 없을 만큼 별별 취미클럽과 협회, 모임들이 있다. 영국인들이 즐기는 특별한 취미와 활동은 문자 그대로 기이하다. 프랑스인들이 영국인들을 일러 ‘기이한 취향과 기괴한 취미(Goûts étranges et passe-temps bizarres)를 가진 민족’이라고도 할 만하다. 이제 영국인들이 가지는 기이한 취향과 기괴한 취미 중에서도 가장 기이하고 기괴한 걸 한번 살펴 보자.
 
 
 
 
 
자개 장식 옷의 ‘진주왕과 진주여왕’ 
 
런던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 가보면 흰색 자개(mother-of-pearl) 단추 수천개, 많게는 수만개를 일정한 패턴으로 빽빽하게 단 검은 정장 양복과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자선 행사나 공식 모임에는 이런 복장을 한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영국인들이 ‘진주왕과 진주여왕(the pearly kings and queens)’이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필자가 지난 1월 19일 자에 소개한 햄머스미스 자선행사에도 참석했었다. 이들은 행사를 빛내주려고 주최 측이 특별히 초청한 손님들이다. 영국인들은 이들이 나타나면 유명 인기인 대하듯이 반긴다. 같이 사진 찍고 대화를 나누려고 줄을 선다. 영국인들은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이들은 유명하다. 그래서 이들이 나타나면 행사장 분위기가 살아난다.
 
이들은 19세기 빅토리아 시절에 시작된, 170년 역사의 특이한 취미 활동을 하는 단체의 일원들이다. 런던에 ‘진주왕과 진주여왕’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30개 가족에 속해 있다.  이들은 호스피스도 방문해서 환자들을 위안하면서 즐겁게 해주고, 학교에도 가고, 지역 행사에도 참여한다. 영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단체 중 하나여서 인기도 높다. 이들은 ‘또 다른 왕족(other royals)’ 혹은 ‘런던 왕족(Cockney royals)’으로도 불린다.
 
본래 이들은 동부 런던이 영국의 주요 항구이던 시절 거기에 살던 서민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 회원들이다. 당시 동부 런던은 지독한 빈민가였다. 그 거리를 쓸던 헨리 크로프트라는 청소부가 특히 길거리의 노점상들을 보살피자는 뜻으로 우선 자신이 눈에 뜨이는 옷을 만들어 입었다. 6만여개의 작고 큰 자개 단추를 옷에 달아 입고 다니면서 노점상들을 돕기 시작했다. 화려한 옷을 입어 자신을 선의를 가진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러자 그의 뜻에 동조하는 동료들이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진주왕과 진주여왕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특히 이들은 당시 노점상들을 단속하던 경찰들과 맞서며 이들의 권익을 대변해 서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이들은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빈곤문제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유명세를 이용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노동자들 중 누구도 이런 남의 일에 나서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크로프트가 제일 먼저 목소리를 높인 셈이다. 그런 숭고한 목적이 있었고, 활동도 의미가 있어서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진주왕과 진주여왕’은 런던 내 28개 구의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누구의 부탁을 받거나 돈을 받고 활동하지 않는다. 만일 필요하다면 돈을 받지만 모두 자선을 위해 쓴다. 그래서 존경받는다. 모두 자신들이 즐거워서 하는 일로 자선 단체 행사나 지역 단체 행사에 초청받으면 기꺼이 봉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다. 이들 복장에는 자개 단추가 수천 개, 많으면 수만 개가 달려 옷 무게가 최고 30㎏에 이른다. 이런 무거운 옷을 입고 자선 모임에 참석해 활동한다.
 
이들은 부자들이 아니다. 모두 노동자 출신이고 대개는 은퇴한 노인들이다. 노동자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전통을 이어가고, 남은 여생을 봉사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옛날을 그리는 자전거 행렬 ‘트위드 런’ 
 
런던의 또 다른 특이 복장을 한 사람들의 행진이 있는데 바로 트위드 런(Tweed Run)이다. 2009년에 시작된 이 행사는 지난 5월 12일에도 있었다. 우리가 보통 홈스펀(homespun)이라고 부르던 영국 복지 트위드로 만든 레트로 스타일 양복을 입고 런던 중심 트라팔가광장에 수천 명이 모인 뒤 런던 시내를 자전거로 달리는 행사이다. 트위드는 일반적으로 해리스 트위드라고 불리는 올이 굵은 격자무늬의 좀 거친 모직 천을 말한다. 영국 인기 드라마 ‘다운튼 애비’ ‘오만과 편견’ ‘피키 블라인더’ 주인공들이 입고 나오던 그런 복장들이다. 참가자들은 현대인이 모자를 벗기 전의 전통대로 모두 모자를 쓴다. 중절모, 헌팅캡 등을 주로 쓴다. 심지어는 연미복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중산모를 쓴 참가자도 있다. 탐정 셜록 홈스가 쓰는 디어스토커(deerstalker) 모자도 많이 쓴다. 디어스토커 모자 위에 옛날에 쓰던 고글 안경을 얹기도 한다. 피우지는 않지만 멋으로 파이프도 많이 물고 등장한다. 우리가 당코바지로 부르고 영국인들은 ‘플러스포(Plus fours)’라고 부르는 무릎 바로 밑에 오는 칠부바지 밑에 긴 양말을 신기도 한다. 물론 자전거도 옛날 자전거여야 격이 맞는다. 결국 옛날을 그리워하며 향수를 자극하는 복장과 기물을 이용한 행사이다.
 
물론 이 행사에 등록할 때는 당연히 자선을 위한 기부를 권한다. 참가자 중 한 그룹은 아프리카에 중고 자전거를 보내기 위해 1400파운드(약 240만원)를 모으기도 했다. 원래 행사 참가자를 500명으로 인원을 제한했지만 이제는 1000명으로 늘어났다. 이것도 금방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자전거가 런던 거리를 가득 채우던 자동차 이전 시대를 재연하자는 취지여서 일종의 환경 보호 행사이기도 하다.
 
이 행사에 기어가 많이 달린 현대식 자전거를 가지고 오는 것은 행사에 대한 모독으로 취급된다. 빨리 달리기 위한 행사가 아니고, 자동차가 길거리의 낭만을 망쳐 버리기 전의 옛날 런던 거리를 재연하자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에게 ‘가장 좋은 시절(Good Old Days)’을 기리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즐기자는 것이다. 이 행사를 레트로 쿨(retro cool)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과거에 대한 막연한 노스탤지어(nostalgia)에서 시작된 듯하다. 
 
참가자들은 런던의 가장 멋쟁이 동네 첼시에 위치한 ‘첼시 아트 앤드 디자인 스쿨’에서 출발해 펍에서 휴식도 취하고 캔싱턴가든에서 차도 한잔 마시면서 ‘최고 멋쟁이 수염’도 선정한다. 물론 행사를 위해 평소 안 기르던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도 많다. 참가자들은 맞춤 양복의 성지 셰빌로에서 베스트 드레서를 선정한 뒤 트라팔가광장에서 해산한다. 물론 공식 행사 해산 뒤에도 특이한 복장 그대로 끼리끼리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거나 카페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낸다.
 
 
 
 
또 다른 복고행사 ‘구형 자동차 경주’ 
 
이런 종류의 복고 취향 행사가 또 있다. 런던에서 영국 남부 해변 휴양도시 브라이턴까지의 자동차 경주 행사이다. 이름하여 런던 브라이턴 간 구형자동차 경주(London to Brighton vintage car rally)이다. 올해로 128회째 열리는 이 경주는 11월 첫 번째 일요일인 11월 3일 하이드공원에서 출발한다. 아침 7시에 출발해 87㎞를 오후 4시30분 전까지 달리면 기념 메달을 받을 수 있다. 주최자들은 이 경주가 시합이 아니기에 속도 경쟁을 하지 말라고 권한다. 도착 순서도 발표하지 않는다. 차량들은 절대 시속 32㎞ 이상을 낼 수 없다. 참가 차량은 최소 바퀴 3개는 달려 있어야 하고, 1905년 1월 1일 이전에 생산된 차여야 한다. 이를 증명할 서류가 있어야 한다. 주최 측의 웹사이트에 이런 자동차들을 일러 ‘말이 없는 수레(horseless carriages)’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사실 참가 자동차들을 보면 그런 표현도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뚜껑이 전혀 없는 자동차를 비롯해 앞 유리창도 없어 거의 마차 같은 차들도 많아서다. 심지어는 자동차 초기 모델인 목탄과 석탄을 연료로 삼는 증기기관 자동차도 나온다. 엔진이 달린 괴상한 모양의 세발자전거(tricycles)도 있다. 앞바퀴는 현재 자전거 바퀴의 두 배 정도 크기이고 뒷바퀴는 거의 10분의1 크기의 자전거이다. 물론 모터가 달려 있어 움직이기는 하지만 자동차와 자전거 중간 형태이다. 운전대도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일부 자동차 운전대는 배의 키(tillers)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마도로스 상징인 타륜(舵輪) 모양의 운전대도 있다.
 
지난해에는 350대의 차가 참가해 거의 90% 넘게 브라이턴까지 완주했다. 그중 126대가 외국에서 온 차들인데 호주, 캐나다, 미국, 아르헨티나, 남아공 등에서도 참가했다. 당시 328대가 완주했는데 제일 먼저 도착한 차는 3시간이 걸린 영국산 1903 MMC 였다. 87㎞를 3시간에 완주했으니 시속 29㎞로 달린 셈이다. 11월에 주최되는 탓으로 날씨가 차서 참가자들은 오토바이용 고글을 쓰고 모자도 방한 모자에 윗옷은 2차대전 때 영국 공군 파일럿들이 입던 무스탕 가죽 점퍼를 많이 입는다. 정말 자동차와 운전자 그리고 승객들만 보면 거의 1900년대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행사에는 대를 이어서 참가하고 3대, 심지어 4대가 같이 타고 오기도 한다. 완전한 가족행사인 셈이다. 참가자들 사이의 동지의식은 놀랄 만큼 높다. 가장 중요한 참가자는 운전자들이 아니라 런던 남부지방 서리와 서섹스를 거쳐 브라이턴까지의 87㎞ 도로 연도에 늘어서서 구경하고 함성을 질러주고 손을 흔든 관객들일지 모른다. 만일 그들이 없으면 행사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참가자들도 자신들을 구경하면서 행복해하는 관객들을 바라보고 뿌듯해한다.
 
런던과 브라이턴 사이 도로에서 열리는 다른 유명 행사는 영국심장협회 주관의 자전거 완주 행사이다. 1976년에 시작되어 매년 거의 3만대 이상의 자전거가 참가해 영국심장협회를 위한 기금 마련을 한다. 남부 런던 클랍함커먼공원에서 시작해 브라이턴해변에서 끝나는데 완주 거리는 86㎞이다. 시작 이후 현재까지 65만명이 참가해 4000만파운드(약 680억원)를 모아서 협회에 기부했다. 최근에는 야간 주행과 산악 경주도 만들었다.
 
런던과 브라이턴 사이 도로에서 열리는 또 다른 유명한 행사로 영국제 미니(Mini) 자동차 완주 대회도 있다. 1985년에 시작해 작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이 행사는 미니 자동차들의 경주이다. 향후 가능하면 계속하겠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매년 거의 2000대 이상의 미니차가 참가해 장관을 이루었다.
 
비슷한 행사로 영국 자동차 랜드로버 경주도 있다. 10월 첫째 일요일 영국 최고의 경마가 열리는 엡섬에서 시작해서 브라이턴까지 가는 행사이다. 랜드로버뿐만 아니라 영국제 MG 자동차, 폭스바겐 공랭식(空冷式) 비틀, 프랑스산 시트로앵 2CV를 비롯해 각종 구식 자동차들도 비슷한 행사를 갖는다. 물론 구식 모터사이클 행사도 열려 매력을 발휘한다.
 
 
6월의 ‘세계 나체 자전거 타기’ 대회
 
이제 가장 기이한 행사를 소개해 보자. 런던에서 가장 화창한 6월이 되면 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인 하이드공원, 리젠트공원을 비롯한 런던 5곳에 완전 나체의 남녀 수천 명이 모인다.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오기도 한다. 이들은 런던 시내 중심부를 완전 나체로 달린다. 그리고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 모였다가 다시 하이드공원으로 돌아와 행사를 끝낸다. 소위 말하는 ‘세계 나체 자전거 타기(World Naked Bike Ride)’이다. 물론 이 행사는 이름에서 보듯 미국, 호주, 독일 등을 비롯해 17개국의 74개 도시에서도 열린다. 올해 런던에서는 6월 8일에 행사가 있다.
 
행사 목적은 기후변화의 주요 원흉 중 하나인 자동차 타기 줄이기와 인간 신체에 대한 존중이다. 팬티나 브래지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남녀가 완전 나체로 참가한다. 나체는 신체를 존중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동시에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몸으로 알리려는 목적도 있다고 주최자들은 말한다. 대낮에 수천 명의 남녀가 정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고 걸어다니는 일은 분명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참가자들은 행사 취지에 동조하고 자선 모금에 참여한다는 취지여서 본인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행인들도 색안경을 끼고 행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런던에서는 2004년 처음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문제없이 행사가 치러졌다. 하지만 프랑스 낭트시는 지난해 행사를 중단시켰다. 이 행사에도 참가하려면 등록과 함께 자선을 해야 한다.
 
영국인들이 이렇게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는 물론 즐거움이 제일 우선이다. 평소 구식 자동차에 기름을 칠하고 고치면서 날씨 좋은 주말이면 타고 다니고 1년에 한 번 큰 행사에 참여하는 식으로 즐거움을 찾는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는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참여에 의의를 두는 행사들일 뿐 아니라 자선모금에도 참여하니 더욱 보람이 있다. 참가자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행복감을 보면 왜 영국인들이 이런 행사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다.
 
이런 행사를 지켜보다 놓치면 안 되는 참가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런던·브라이턴 간 구형자동차 경주 행사에 등장하는 350명의 자원봉사 진행요원들이다. 행사가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끝나게 하는 데 이들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국 특유의 11월 초 겨울 날씨에 4~5시간씩 서서 봉사하는 진행요원들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경주에 참가해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봉사함으로써 즐거움과 보람을 함께 찾는 것이다. 이런 모든 행사들은 자원봉사 진행요원이 없으면 이어질 수가 없다. 위에서 설명한 미니자동차 행사도 진행요원을 못 구해서 중단했다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고달픈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지혜는 배울 만하다. 삶의 의미와 의의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지 않고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이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 <영국 왕실+정치 편> (2024) 핫하고 힙한 영국(2022),
       두터운 유럽(2021), 유럽문화탐사(2015),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영국인 발견(2010)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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